보령 성주사지는 新羅下代 文聖王 12년(847년)에 무염대사가 주석하게 되면서 창건된 사찰이며, 창건 이전의 先代伽藍은 百濟時代 烏合寺로 알려져 있다.
본 論文은 이러한 聖住寺 創建 以前의 先代伽藍이 百濟 烏合寺(烏含寺)로 인식되는 현 시점에서 몇 가지 의문에 의해 시작하게 되었다. 이를 간략히 언급하자면 성주사지선대가람은 백제시대 오합사로 알려져 있으나 관련 사료인 『聖住寺碑文』과 『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文』에는 성주사 창건 이전의 선대가람을 金仁問과 연관 짓고 있다. 그러나 후대 기록인 『崇嚴山聖住寺事績記』만이 百濟 法王이 창건한 오합사가 그 기원임을 밝히고 있다. 이외에 백제시대 北岳에 위치하는 오합사와 현재 성주사지와의 지리적 모순도 이러한 의문점을 가중시킨다. 이에 대하여 筆者는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유구와 관련된 층위, 유물에 대한 고고자료를 좀 더 세부적으로 검토하여 성주사지 선대가람의 創建時點에 대하여 논해 보고자 하였다.
검토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발굴조사 당시 확인된 고고자료에 따라 층위를 분석한 결과 선대가람은 하나의 가람군으로 造營되고 維持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건물지의 基壇은 모두 塼石混築基壇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여기에 출토유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선대가람에 사용된 Ⅰ형식의 연화문수막새 중 ⅠB유형은 선대가람의 유구와 관련성이 높은 안정된 층위에서 확인되고 있어 당시 건물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보다 이른 유형에 속하는 ⅠA유형은 비교적 개채수가 적고 출토 위치 또한 대부분 불분명하기에 사역 조성 과정에서 混入된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현재 성주사 사역 중앙에 위치한 성주사 창건 이전의 선대가람은 7C 중ㆍ후반기경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창건과 관련된 주체는 당시 보령지역을 封地로 받은 金仁問 勢力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