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지역에서 토광묘를 발견한 예는 적지만 백제 전역에 분포하고 있다. 현재조사된 유적은 서울의 가락동, 석촌동, 충청지방의 서산 대산면, 부여의 소사리와 신리, 청주의 신봉동을 들 수 있고 영산강 유역에는 만수리에서 발견 조사되고 있다. 이외에도 토광묘로 인정되는 유적은 다수 알려졌으나 유적보다는 유물 수습 과정에서 토광묘로 추정된 것이다
토광묘의 축조는 단순하지만 조영상 몇가지 특징이 지적된다. 먼저 고분의 입지선정에 있어서 대체로 평지형과 산지형으로 구분되고 대다수 토광묘의 배경에는 광활한 평야지를 끼고 있다. 토광묘 축조인들의 생활기반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묘제의 구축은 대체로 지하식과 지상식으로 분류되며 지상식으로 보이는 토광묘는 평지에 축조되었을뿐 아니라 봉토가 잔존하고 있다. 그러나 산지형 토광묘는 대부분 지하식으로 봉토는 거의 보이지 않는대 유실에 의한 것이다.
침향은 일정한 형식이 나타나지 않으며 이는 방위에 대한 관념이 깊지 않기 때문이며 동일봉토내 축조된 토광에서조차 침향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다. 침향은 방위보다 자연,지형적 조건이 우선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토광묘의 매장법은 단장, 다장으로 분류되는데 다장의 경우 일봉토하 다장이란 특징을 보이며 단장은 일광에 일신을 매장한다. 그런데 단장으로 조사된 대부분 토광묘도 봉토가 유실되어 토광이 밀집된 것은 일봉토하에 다장의 형태가 아니라는 단정은 조심해야한다.
본고에서 고찰한 토광묘는 백제 횡혈식 석실분인들에 의한 강력한 영향하에 도달하기 전에 각지에서 아직도 독자적으로 전통적인 문화기반 위에 생활하던 토착인에 의해 조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