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초기 묘제를 적석총계와 토광묘계로 나누어 개별 묘제의 발생 문제, 사용 기간, 성격 등을 살펴보았거니와 지금까지 주목되지 못하였던 토광묘계 토착인들이 의외로 복잡한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미 해상 활동을 통해 중국 동진 등 타지역과도 교류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능력을 가졌던 토착민들이 왜 이주민 세력에게 밀려 흡수되고 말았는지는 아직 까지 고고학적으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지만 이들은 분명히 온조계 세력이 도착하기 전에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북에서 내려오는 온조계가 마땅히 대비하여야 할 지역이 북쪽이면서도 한강에 이르러 바로 도하하지 못하고 일시적이나마 한북위례성에 머무를 수 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2~3년 사이에 축적된 고고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백제 초기 묘제를 정리한 결과 서기 400년을 중심으로 한 전후 1세기 정도의 범위는 실제 연대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전의 연대는 앞으로의 조사 진행에 따라 약간의 변동이 잇을 것으로 예측되며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파악되는 석촌동 3호분 동쪽 고분군 내의 대형토광묘보다 연대가 오를 수 있는 자료가 나타나리라고 믿는다. 그서은 이를 가장 빠르다고 여겨지는 토광묘들이 그 규모나 구조, 출토 유물 등에서 가장 성숙된 단계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