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횡혈식 석실분의 시원형은 한강유역의 가락동, 방이동의 석실분을 고려하면 네벽 조임식이 처음 축조되었다. 이 네벽 조임식은 구조적 세련이 이루어지면서 궁륭식으로 귀착되어 백제 횡혈식 석실분의 초기형으로 정착된다. 그러나 궁륭식 석실분은 무령왕릉이라는 남조의 전축묘제의 출현에 의해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 터널식으로 변천되는데 이 과정에서 아치식의 구조가 파생되고 있다. 한편 터널식은 백제인의 고분 축조경험의 축적에 따른 기술발전으로 자체적 구조 형식변화가 나타나 평천정의 유형으로 전환되는 바 터널식이 괴임식으로 괴임식에서 수평식의 발생이 이루어진다. 이외 맞배식은 특수형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조임식 중에서 네벽 조임식은 시원형 외에 원형천정인 궁륭식이나 터널식의 아류로서, 양벽조임식은 터널식과 괴임식의 아류로서 축조되는 순서배열이 가능하다.
편년은 백제의 도읍지가 시공상 세 지역으로 구분이 가능하고 나아가 터널식의 모형인 무령왕릉의 절대연대를 기준으로 각 형식간 선후 및 변천내용을 근거하였다. 백제 횡혈식 석실분이 전기의 묘제를 계승한 것이라기 보다는 외부에서 유입된 묘제로서 신묘제 유입의 배경 및 관련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백제 횡혈식 석실분의 시원형인 네벽조임식이 4세기 후엽에 축조된 것으로 보았다. 이는 백제 횡혈식 석실분이 외부에서 유입된 묘제로서 신묘제 유입의 배경 및 관련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이 신묘제는 5세기 중반에 궁륭식이라는 초기형으로 특성의 정착이 이루어진 바 궁륭식은 웅진으로 남천후 상당기간 사용되고 있는데 하한은 6세기 전기의 중반, 무령왕릉 축조 시기까지다. 궁륭식을 이어 사용된 터널식은 무령왕릉 등장과 함께 비롯되는 바 대체로 520년대에 등장하여 사비로 천도한 6세기 후기 초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았다. 이 과정에서 아치식은 터널식과 함께 등장하지만 웅진 도읍시기의 일시기만 축조된 형식이다. 평천정은 터널식의 진화발전의 결과 6세기 중반에 나타나서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나 7세기 초반에는 수평식이 등장하여 함께 조영된 것으로 보았다. 맞배식은 구조형식상 6세기 후반 말에 축조된 것이고 조임식은 네벽조임이 궁륭식과 터널식 같은 원형천정 축조시기에 양벽조임이 터널식에서 괴임식으로의 전환과정 및 괴임식 사용시기에 지방사회에서 아류로 조영된 것으로 보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