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유적의 현황
III. 시굴조사 내용
1. 1호분
2. 2호분
IV. 연대와 성격
1. 영산강유역 장고분의 조사현황
2. 영산강유역 장고분의 축조시기
3. 광주 월계동 장고분의 연대와 성격
V. 맺음말
요약
이 글은 1993년 광주 월계동에서 발굴된 장고분 2기에 대한 현황을 보고하여 전남지역 장고분의 축조 배경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 글이다.
전남지역의 장고분은 10여기가 알려져 있고 그 가운데 영암 자라봉고분, 함평 신덕고분, 광주 월계동 1․2호분, 광주 명화동고분 등 5기의 장고분들이 발굴조사된 바 있다.
이 5기의 장고분은 4~6세기대에 해당하는 것이면서 일본 전방후원분에서 특징적으로 출토되는 원통형토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따라서 이 5기의 장고분들은 축조연대와 고분의 구조, 출토유물등에 있어 일본 전방후원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에 틀림 없는데 앞으로 그러한 관계를 구명하는 일이 커다란 과제라 하겠다.
최근 필자는 함평 예덕리에서 7기의 장고분을 조사하였고 그 중에는 늦어도 3세기에 해당하는 장고분이 섞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라서 함평 예덕리 장고분들은 일본 전방후원분의 출현 시기로 보고있는 3세기 말보다 더 앞서며 일본 전방후원분의 기원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함평 예덕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자세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지만 일단 필자는 영산강유역에서 대형옹관묘를 축조하던 집단과 장고분을 축조하던 집단이 공존하다가 늦어도 3세기 중엽경에 장고분을 축조하던 집단을 일본으로 이주해서 장고분을 발전시켜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집단은 전혀 이질적인 집단이 아니어서 상호 교류가 계속되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고향으로의 귀환과 혼인 등의 인적 교류로 말미암아 다시 전남지역에 장고분들이 축조되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