茂形里甕棺墓의 조사성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옹관묘는 넓은 평야를 배후로 가진 구릉사면에 단독으로 만들어졌고, 매장과정에서 일부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 매장구조는 單甕式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매장시설 중에서 다른 지역의 옹관묘와 비교하여 토기를 덮개로 하여 시신을 덮었다는 점과 바닥에 시상석을 마련해준 점이 특이하다고 하겠다. 이 같은 구조는 기존에 알려진 백제 옹관묘에서 부분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매장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옹관장의 기본적 특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피장자는 출토된 치아로 보아 3-6세되는 유아임이 분명하고, 축조시기는 6세기 중반이후의 백제말기로 보인다. 그리고 입지 및 매장구조로 볼 때 이 옹관묘는 지리적, 시기적으로 가까운 부여지방의 일부 옹관묘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 전북지역의 甕棺墓는 토착세력의 묘제로 A.D.2세기에 扶安 堂下里의 小形 合一式甕棺墓에서부터 시작하여 A.D.3-4세기이후에는 高敞 松龍里의 專用合一式甕棺과 高敞 新月里의 토기가 부장된 大形合一式甕棺으로 발전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 지역 甕棺墓의 발전과정을 살피기에는 자료가 부족한 실정인데, 특히 매장구조가 자세히 밝혀진 것이나 시기적으로 늦은 자료가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조사된 茂形里甕棺墓는 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單甕式의 매장구조를 자세히 밝힐 수 있었고, 5C중엽 이후 이 지역에서 石室墳이 본격적으로 축조되는 과정에서도 甕棺墓는 여전히 기존 묘제의 하나로 계속해서 축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적으로 약간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