竪穴式과 橫口式 石槨墳의 古墳立地에서 보면 山斜面을 택하여 산경사에 直交하도록 石槨을 안치하고 있기 때문에 南斜面에 위치한 경우 枕向은 동쪽에 가깝게 되고, 西斜面의 경우 南枕에 가깝게 되기 때문에 석곽의 안치에 있어 方位槪念보다는 지형에 따른 석곽의 안치가 被葬者의 意識속에는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竪穴式 石槨墳이나 橫口式 石槨墳도 橫穴式 石室墳의 영향권에 들어서게 되면 횡혈식과 같이 산 경사에 평행하여 주로 북쪽으로 枕向이 바뀌게 되지만, 그 지역 내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묘제가 수혈식일 경우는 橫穴式 石室墳도 竪穴式 石槨墳과 같은 枕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분의 구조적인 면에서 중앙묘제의 영향을 받지만 葬制樣式的인 면에서는 傳統性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으로 정치체제의 변화와 더불어 곧바로 보편적 문화체계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긍정하기 어렵지만 전통성과 보수성이 강한 묘제에 있어서만은 서서히 그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수혈식이나 橫口式 石槨墳에서는 관정이 발견되지 않고 橫穴式 石室墳에서는 관정이 발견되고 있어 현재까지의 자료로 볼 때 前者의 경우는 시신을 직접 납입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橫穴式 石室墳이 채용되면서 木棺의 사용과 2人葬도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橫穴式 石室墳의 영향으로 수혈식에서 橫口式 石槨墳이 축조되고 나아가 전형적인 횡혈식 전통에서 벗어난 羨道시설을 갖춘 석실분이 나타나고 있으며, 축약되고 형식적인 羨道를 갖춘 橫穴式 石室墳이 전북 서해안지방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시기는 5세기 중엽이후부터 6세기 초나 중엽에 이르면 부여지방을 비롯해서 넓게 분포하게 되는 橫穴式 石室墳이 이 지역에도 보편적으로 채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