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산리고분군은 모두 14기의 분묘로 구성되었으며, 墓制的 측면에서 보면 매우 단순한 구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같은 王陵群으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이 塼築墳을 비롯하여 石室墳이 있고, 석실분에서도 竪穴式이 있어 비교적 다양성을 보인다. 그러나 능산리 고분군에서 塼築墳은 전혀 확인되지 않으며 아직 수혈식 石室墓의 墓制도 확인된 바 없다. 단지 횡혈식 석실분만 통일적으로 조성되어 있을 뿐이다. 동․서로 구분된 고분군은 東古墳群의 경우 서쪽의 고분군에 비해서 규모가 작을 뿐만 아니라 축조형태에서도 특이성이 적다. 모두 고임식 천정에 장방형의 묘실이나 규모와 축조방식에서 서쪽의 고분과 비교할 경우 열세적 위치에 있다. 따라서 능산리 고분에서 王陵級의 형상을 분명히 지닌 것은 서쪽의 고분 6기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들 서쪽의 고분 6기는 구조형식에서 차이가 있는데 천정가구의 형태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태로 있다. 중하총과 같은 터널식이 있는가 하면, 중상총과 같은 고임식의 구조가 있고 나아가 동하총과 같은 수평식이 있다. 그런데 중하총은 터널식 石室墳의 일반적 형태에서 재료가 보다 세련된다거나 연도가 중앙으로 정착되는 등의 발전된 모습을 보이지만 벽면의 회바름 등의 기법은 아직 전단계의 요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나아가 단 다장적 측면에서 보면 중상총과 같은 고임식이 다른 분묘보다 이른 시기의 것이고, 동하총은 수평식으로 백제 말기에 성행한 형식이다. 능산리 고분군이 百濟 王陵으로 명실상부한 위치를 갖는 것은 사비도읍기에 처음 타계한 聖王이 여기에 묻혔기 때문인데 墓制는 그의 부친인 무령왕의 능과 어느 정도 상통하면서 보다 발전된, 즉 百濟化된 것이 사용되었을 것일 뿐만 아니라 古墳群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 된 것으로 이는 중하총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하총은 陵山里 古墳群의 고분배치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외 聖王이후 威德王이나 惠王과 法王의 무덤은 만일 그들이 동일혈연이고, 동일 능역내에 안장되었다면 聖王陵인 중하총 주변에 일단 함께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威德王陵은 성왕릉인 중하총의 다음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 동상총이 가장 유력하며, 이외 혜왕이나 법왕의 능묘는 單葬으로 남겨진 중상총, 서상총, 서하총, 그리고 동하총까지를 대상으로 하며, 이들이 왕과 왕비의 4인의 무덤이 아닌가 추정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