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墳墓資料를 통해 본 政治制度
III. 百濟後期型石室의 階層性과 官等制
IV. 石室墳을 통해 본 百濟의 地方統治
V. 맺음말
요약
사비기에 들어서 백제지역 고분은 고도의 정형화와 광범위에 걸친 분포를 보이게 된다. 당시의 중앙인 부여를 기점으로 하는 이러한 현상은 백제 중앙 정권에 의한 무덤 축조의 규제를 나타내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앙인 부여 중심부에 입지하는 능산리고분군에서는 대형 판석을 사용해서 단면이 육각형으로 축조한 석실분의 一群이 있는데, 이들은 ‘능산리 규모’의 실정이 가능할 만큼 정확한 규격성을 가지고 있다. 또 같은 규격을 가지면서도 석재를 달리해서 축조된 석실들이 있는데, 이들 사이에 보이는 석재와 구조 차이는 석실에 매장된 피장자간의 계층 차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규격성이 있는 석실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공통된 척도 또는 측량단위가 불가결하다고 생각되는데, 능산리 규격에는 약 25cm 정도의 측량단위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할 수 있다.
이들 석실분이 당시 백제 관료의 무덤이었음은 거기서 출토되는 은화관식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문헌에 기재된 이들 출토품의 위상과 석실분의 위계를 연결시켜 봄으로써 백제 16관등 중 어느 관위를 가진 관료가 어떤 형식의 무덤에 매장되었는지 추정할 수 있다.
높은 규격성을 가진 석실은 중앙 뿐만 아니라 백제 영역 내 각지에 분포하며, 일반적으로 중앙에서의 멀리 떨어질수록 규격성도 떨어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거점적 위치에 있던 지역에는 비교적 중앙과 비슷한 규격을 가진 석실분이 축조되었다.
또 백제의 지방통치에 대해서도 석실분의 위상과 분포를 검토함으로써 문헌사료에 보이는 내용을 보완할 수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