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횡혈묘는 扶餘 陵山里 古墳群, 公州 熊津洞遺蹟, 山儀里遺蹟, 安永里遺蹟, 安永里 새터ㆍ신매遺蹟과 扶餘 井洞里遺蹟 등과 함께 百濟 熊津都邑期에 조성되기 시작한 公州 丹芝里遺蹟에서 橫穴墓 24기가 群集을 이룬 상태로 조사되었다.
특히 丹芝里 橫穴墓는 構造形態가 日本의 固有墓制로 인식되어오던 橫穴墓 중 初期 形態인 地下式 橫穴墓와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여기에서 出土된 土器 중 일반적으로 日本 須惠器의 製作 技法으로 알려져 있는 긁기 調整技法(カキメ), 깍기 調整技法(ゲスリ), 물손질 調整技法(ナデ) 등이 관찰되어 百濟와 倭와의 교류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丹芝里 橫穴墓群 피장자들의 성격에 대하여는 百濟가 熊津都邑期에 倭와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는 『日本書紀』와 『隋書』 등의 기록에 보이는 筑紫國 軍士集團 또는 高位階層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즉 이들의 성격은 한반도에서 횡혈묘가 百濟의 都邑이었던 公州ㆍ扶餘地域에만 분포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 점과 武器類가 전혀 출토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당시 百濟에 와서 생활하던 官人ㆍ商人 등 倭人들의 무덤이거나, 그들에 의하여 조성된 墓制일 가능성 높으며, 이와 함께 土器에 보이는 須惠器의 製作技法 역시 古代 百濟와 倭 사이에 人的交流, 技術交流 등 활발했던 교류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