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安厝登冠大墓’
3. 柳宗元․韓愈 시대의 ‘大墓’
4. 武寧王 시대의 ‘大墓’
5. 墓地 혹은 墓域으로서의 ‘墓’
6. 결론
요약
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발견되고 발굴된 백제 무령왕릉에서는 '大墓'라는 글자가 두 군데서 확인됐다. 하나는 무령왕 志石 銘文에서 '安조登冠大墓'라는 구절로 보이며, 다른 하나는 '改葬還大墓'라는 문맥에서 발견되는 무령왕비 지석이다. 이 '大墓'를 지금까지는 모두가 지금의 무령왕으로 간주했다. 다시 말해, 嬪 기간이 끝나면서 이들 두 부부가 영원히 안식하는 공간으로서의 '정식 왕릉'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통설에는 의문점이 적지 않다. 다른 무엇보다 무령왕릉은 여타 무덤에 비해 축조 기술이 뛰어나고 규모가 큰 편에 속하기는 하지만, 굳이 '大墓'라고 대서특필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大墓'를 '종족 공동묘지'로 치환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실제 '大墓'는 무령왕 시대를 중심으로 그 전후에서 발견되는 用例를 검토할 때, 규모가 큰 특정한 무덤이 아니라 그런 무덤이 무리를 이룬 墓域임이 드러난다. 특히 동시대 중국에서는 적어도 지배계층에서는 부계 중심 특정 종족이 특정한 지역에다가 무덤을 조성하는 일은 적어도 東吳시대 이래 일반화한 풍습이었다.
이렇게 '大墓'를 종족 공동묘지로 이해할 때, '登冠大墓'라는 구절의 '登冠' 또한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해명할 수 있다. '登冠'은 무령왕을 비롯한 당시 백제 최상층 夫餘氏의 종족 공동묘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다. '登冠'은 글자 그대로 이런 묘역이 자리잡은 陵山이 머리에 관을 얹은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유래한 명칭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의 송산리 고분군이 웅진시대 백제 왕족의 공동묘역임을 명확히 하는 한편, 여타 다른 지역에서 무리를 이룬 채 발견된 백제시대 다른 고분군 또한 특정 종족의 공동묘지였을 가능성에서 접근해야 함을 확인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