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장고분의 정체를 파악해보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장고분은 주로 영산강 유역의 핵심지역인 나주의 외곽지역에 산재되어 있다는 점과 대부분 단독으로 분포한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장고분의 입지는 구릉 정상부로 비슷하며, 분구의 규모는 가장 작은 것은 30m 내외, 가장 큰 것은 70m가 넘는다. 평면 형태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원부와 방부 사이에 짧은 연결부가 있는 것과, 다른 하나는 원부와 방부가 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장고분은 모두 분구 주위에 주구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나머지 장고분에도 주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분구와 주구 사이에 분주물이 배치된 장고분이 많으며 아직 확인되지 않은 장고분에도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영산강 유역 장고분들의 모델이 일본 전방후원분에 있을 것으로 보았으나 분구의 규모와 외형상 유사성만 가지고 일본 내의 모델을 찾는 작업은 어려운 일이다. 일본과의 관계를 파악하는데는 매장주체시설과 출토유물을 비교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고분의 매장주체시설은 석실인데 영암자라봉고분만 수혈식이고 나머지는 모두 횡혈식이다. 영산강식 석실은 백제석실의 영향을 받아 축조된 것이라는 견해와 일본 규슈석실과 관련된 것이라는 견해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전남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를 보여준다. 영산강식 석실은 복암리 3호분의 96석실의 부장유물로 보아 5세기 4/4분기에는 나타나고, 백제식 석실은 영산강식 석실에 이어 6세기 3/4분기부터 나타나고 있다.
장고분의 출토유물은 분주토기와 제사유물들이다. 특히 분주토기는 원통형의 특수토기로서 일본의 고분에 장식용 토기를 배치하는 것에 착안하여 새로운 형태의 분주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을 가능성을 상정하였다. 분주토기는 영산강 유역의 마한세력이 백제에 병합되는 6세기 중엽이 되면 지속되지 못하지만 이후 일본에 파급되었다. 이밖에 토기로는 개배, 유공광구소호, 발형기대, 삼족기 등이 있다. 금속유물로는 함평 신덕고분의 환두대도가 반구형의 장식으로 국내에서 유일하며 일본에서 반입되었는데 그 피장자의 성격에 따라 일본과의 교섭을 통해 반입된 것인지 일본에서 직접 가지고 온 것인지 판명이 날 것이다. 은으로 장식된 쇠창 역시 일본에서 6세기에 유행하였던 것이고, 고삐, 운주 등의 마구는 백제에서 제작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장고분의 피장자에 대해서는 5세기 4/4분기에 이와이 세력의 북규슈 진출로 인해 영산강 유역으로 망명한 북규슈 지역의 세력자로 추정하였고, 히고형 석실 고분의 주인공들은 이보다 늦은 6세기 2/4분기 야마토정권의 지배를 피해 망명한 아리아케카이 지역의 세력자로 추정하였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