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남해안 지역 왜계 고분의 전개 과정
Ⅲ. 남해안 지역 왜계 고분의 축조 배경
Ⅳ. 맺음말
요약
이 글에서는 5~6세기에 남해안 지역에 축조된 倭系 고분의 등장 및 전개 과정과 축조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묘제와 부장품으로 보아 가장 왜적인 요소가 강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고흥 야막, 해남 외도, 신안 배널리와 같은 연안항로의 요충지에 먼저 축조된다. 왜와 백제의 교역에 직접적으로 종사한 倭(系)人의 활동과 관련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무덤 피장자와 직접 관련된 현지 수장의 고분이 고총화된다. 외도와 짝을 이루는 해남 신월리고분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향에 영향을 받아 인접한 현지 세력 속에서도 고총을 축조하기 시작한다. 영암 옥야리고분군에서 약간 벗어난 구릉에 위치한 방대형의 장동고분이 대표적이다. 이후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정치적인 지형의 변화와 연동되어 영산강유역 및 소가야의 주요 세력이 백제-왜 왕권을 큰 축으로 하는 교섭 루트에서 주로 北部九州勢力과 활발하게 교섭하면서 九州系 횡혈식석실묘, 전방후원형고분을 축조하는 본격적인 고총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생각된다.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섭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로는 연안항로였으며 바닷가의 구릉에 축조된 倭系 고분은 이러한 바닷길의 안전한 확보와 해당 지역 정치체의 협조와 관련된 상징적 장치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백제는 왜와의 직접 교류를 강화하였고, 대 가야도 아직 왜와 교류를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열도에 중점을 둔 남해안 지역 집단은 왜와의 교류에 따른 이익을 담보하기 위하여 일본열도 내 특정 집단과의 상호 연계의 강력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필요에 따라 전방후원형고분 등 倭系 묘제가 반영된 고총이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