緖言
基本史料의 性格
漢城에 대한 史料의 性格
王都의 構造에 대한 記錄
北漢城과 北漢山城에 대한 記錄
初期都城制의 基本性格
餘言
요약
백제초기 왕도인 위례성과 한성, 한산에 대하여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원초적인 사료로 하여 우선 문헌에서 알 수 있는 사정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서 온조 14년의 천도 이후는 현재의 한강 이남일대에서 이도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그에 따라서 한강 남안에 있는 몇 개의 토루유적들을 살핀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나루터를 끼고 존재한 것들이었다. 나루터를 끼고 존재했던 고대의 도읍지로서 특히 강의 남안에 있던 낙랑군치소와 백제의 웅진, 사비와 함께 주목된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다음으로는 우리나라 고대 도성의 계열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그 유형적 계열화가 약간의 문제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존재하는 유적 자체의 비교만을 배경으로 한 계열에는 상세한 역사적 배경의 고찰이 결여되어 있으며 따라서 발생론적 설명에서 새로운 유형으로 파악될 수 있다.
현재 서울과 그 부근에서 남한산성, 북한산성, 아차산성, 불암산성, 이성산성 등이 산성으로서 주목의 대상이며 평지 내지 구릉지대의 성은 풍납동토성, 몽촌토성, 삼성동토성과 기타 구산, 중곡동 등지의 것들이 주목된다. 강북지방의 중랑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발단한 평지와 낮은 구릉지대에 토루유적이 있고 그 동쪽에 아차산성-봉화산-불암산이 북으로 이어진다. 북한산성은 서북방으로 있어 배후를 이룬다. 이러한 성지의 배치는 중랑천유역 유적을 중심으로 산성과 한강이 둘러쳐진 것을 말하며 이 경우 위례성은 중랑천유역의 대소토루유적에서 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강남의 경우 한강을 자연적 해자로 보고 그 남안에 나루마다 있는 유적들이 방어취락이라고 생각된다. 이들 가운데 풍납동토성은 중심적 위치이고 바로 강건너의 아찬산성이 광개토왕비의 아단성과 같다면 이를 의식하고 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종래 이를 사성에 비정한 견해는 타당성있는 견해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다른 토루들도 대부분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목적으로 축조되었을 것이다. 광나루는 삼국초기부터 가장 중요한 도진이었을 것이다. 그 후방의 몽촌토성은 약간의 차이성을 가진 토성이라 할 수 있다.
이성산성은 그 아래의 궁촌과 더불어 가장 주목되었으나 남한산성을 한산성으로 본다면 이성산성은 남한산성의 北岐다. 개로왕 21년 북성, 남성은 한산하의 주민들이 입보하였던 이성산성과 남한산성으로 볼 수 있겠다.
한성의 위치는 따라서 몽촌~이성산 사이의 성내동, 천호와 현 서울특별시와 광주군 서부면을 이루는 산능선의 동부인 화이리, 감북리, 감리 등지를 중심으로 존재하였을 것이다. 한산은 곧 한산성(남한산성)으로 일시 산성으로의 이거를 말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