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에 나타난 기록만으로 백제의 웅진도읍기 왕궁에 관한 내용은 왕의 거처로서 궁이 존재하고 몇 차례에 걸친 중수가 있었다는 사실 외에 왕궁의 위치나 규모 등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 동성왕 22년 임류각의 건립기사와 함께 궁의 방향에 대한 언급을 남기는데 이는 임류각지의 확인이 이루어지면 궁의 대략적 방향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1980년 조사된 임류각지는 건물의 특성 및 유물로 미루어 문헌에 보이는 임류각으로 보는데 무리가 없다. 임류각은 궁동에 자리하는 바 역으로 임류각 서에 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사된 임류각지에서 서쪽으로 궁이 입지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곳은 많지 않다. 그동안 백제의 왕궁지로 추정된 곳은 공산성 서남말단지역이었는데 이는 이곳에서 수합된 백제의 방형초석의 존재인데 이는 이동된 것으로 확인된 바 타당성을 잃었다.
백제왕궁지로 후보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왕궁지 외에서 찾아야 하는데 마땅한 입지를 가진 곳이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왕궁의 위치는 임류각에서 방향을 고려하면 성내에서 가능하며 금번 조사한 쌍수정 앞 광장 외에는 적합한 입지를 찾기 어렵다.
기실 이번에 조사한 쌍수정 앞 광장의 추정왕궁지에서도 왕궁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만한 적극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주지역의 백제유적조사례로 보면 이번 조사가 적당하다. 그 이유로는 이 지역이 문헌에 나타난 임류각과 궁과의 방향이 거의 일치하고, 조사된 추정왕궁지내의 유적을 보면 건물 및 창고, 연못 등 다양한 내용을 보이며 출토된 유물 중 백제와류가 많은 것은 이곳에 백제기 많은 건물이 조영됨을 암시한다. 또 백제의 웅진천도가 계획적 수도의 천도가 아닌 피난이란 급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왕궁이 성내에 있었으리라는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요컨대 왕궁지로 비정하고 실제한 이번의 조사는 공주지역에서 백제시대 유적으로는 비교적 많고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다만 이들 유적이 왕궁시설이라는 적극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으나 조사된 유적, 유물 등으로 미루어 웅진천도초기에서 임류각이 건립된 시기까지 이곳이 왕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