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축성법 중 석성의 면석쌓기와 토성의 적심쌓기에 대해 지금까지 보고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료의 부족으로 토성의 적심쌓기는 백제 한성기 축성법만 한정하여 간단히 언급하였다.
삼국시대 축성법은 면석의 형태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 고구려의 축성법은 백제나 신라에 큰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조선시대에까지 우리나라 축성술의 근간이 되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 중 물림쌓기와 채성의 밑에는 큰 돌을 기초돌처럼 놓고 위로는 보다 작은 면석을 놓는 방법, 사각추형의 다듬면석들을 대표적으로 들수 있다. 또 석성의 토석혼축적심쌓기도 고구려가 이른시기부터 응용한 방법으로 신라에도 영향을 주었음이 확인된다.
백제 한성기 토성 적심쌓기에는 성토적심, 판축적심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판축적심에는 호성성벽 유무에 따라 세분할 수 있다. 호성성벽이 없는 판축적심이 시기적으로 앞서 출현했다고 볼 수 있으며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3세기 경에는 이미 축성법으로 활용되었다.
석성이 주류를 이루는 고구려나 신라에서는 웬일인지 백제와 비교하여 성벽에서 판축쌓기에 관한 보고 예가 극히 적다. 즉, 고구려의 토성에도 요령성 고려산성에 10~15cm 두께의 흙다짐층이 있고 길림시 중심에서 7km에 위치한 용담산성도 황토로 6~12cm 두께의 흙다짐층이 있다. 신라에서는 순지리토성 외에 경주 도당산성에 흙다짐층이 붕괴된 성벽에서 보인다. 중국의 축성법은 우리나라 초기의 성곽에 큰 영향을 준 듯하다. 이런 문제 규명을 위해 앞으로 많은 자료의 집적이 필수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