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언
II. 아차산성
III. 보루성유적
IV. 토루·석루유적
V. 고찰
VI. 결어
요약
본고는 아차산성을 《삼국사기》와 광개토왕릉비에 나오는 阿且城으로 비정하는 견해를 따랐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온달전의 아단성도 이곳 아차산성으로 비정하였는데 실제 답사를 해보니 아차산성 일대에도 온달관련 설화가 구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아차산성으로 비정되던 장한성의 위치를 용마산 줄기에서 망우산 줄기로 이어지는 보루성으로 비정하여 보았으나 이 문제는 앞으로 좀 더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아차산성은 백제도성을 방어하던 한강이북의 최후방어선으로 15개소의 보루성이 결합되어 중심성인 아차산성을 보호하는 등 예상외로 물샐틈없는 방어체제를 이루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일 아차산성 방어선이 무너지면 풍납동토성은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마련이었다. 이 때문에 아차산성의 연구는 그 중요성을 더 하게 된다. 또 아차산성의 방어체제는 용마산 줄기와 망우산줄기로 이어지는 제 1방어선과 태봉 보루성, 백련봉 보루성, 아차산 보루성, 시루봉 보루성으로 이어지는 제 2방어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방어체제가 선조직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아차산성을 중심으로 한 방어체제는 고구려가 점유하고서도 몽촌토성 등을 중심거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고구려로서는 이를 재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아차산성의 방어체제는 크게 보강된 듯하다. 한편 신라가 이 지역을 점유하고서는 하남시에 위치한 이성산성일대를 거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백제나 고구려때보다는 중요성이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아차산성을 중심으로 한 방어체제는 그대로 유지되었음이 이들 유적에서 채집된 유물로서도 확인되었다. 이들 유적에서 채집된 고구려 토기편들은 구의동유적과 몽촌토성의 발굴에서 출토된 고구려토기와 함께 고구려와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