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사비성의 역사
III. 부소산성과 나성
IV. 고분의 분포상
V. 도내유적
VI. 백제왕당지의 탐색과 도로유적의 발견
VII. 중국도성제도와의 비교
VIII. 맺음말
요약
왕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한 성곽시설은 山城과 羅城으로 구성되었다. 산성은 우리나라 고유의 성곽형식이며 나성은 중국에서 도입된 발달된 성곽시설이다. 泗沘山城, 즉 현재의 扶蘇山城은 나성의 北端에 위치하였으며 錦江 강변의 요해지에 자리잡았다. 우리나라 형식은 테뫼式과 包谷式의 둘로 크게 나눌 수 있지만 부소산성은 이 두형식이 결합된 소위 複合式山城의 계통에 속하고 있다. 軍倉址가 있는 主峰을 둘러싸서 축조된 부분이 퇴뫼식산성에 해당되며 이것은 泗沘遷都 이전부터 있었던 所夫里縣의 산성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로부터 北쪽에 있는 계곡을 포용해서 축조된 포곡식산성은 천도를 위하여 확대된 부분이다. 東門址에 접속된 성벽은 내외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圓柱를 배열했으며 매우 정교하게 특이한 구조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 이외의 부분은 土壘처럼 축조되었으며 성벽의 바깥쪽 기슭에 낮은 석축이 시설된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동문지 부근을 발굴했을 때 城안쪽 퇴적층에서 「大通」의 두 글자가 새겨진 기와조각이 출토되었다. 이것으로써 부소산성의 확대공사가 서기 530년에 실시된 사실을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성의 축조는 도성의 내부와 외부를 명확하게 구분해 놓았다. 왕궁이 소재한 도성내부는 특별한 관리를 필요로 하는 지역이며 그 보존을 위하여 많은 規制들이 실시되었다. 이러한 규제들은 都城制度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능산리 나성 외부에 있는 왕실묘역의 위치 선정도 이와 같은 도성제도와 무관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사비 도성 내부에는 왕릉조차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천도 이후의 무덤들은 물론이거니와 천도 이전에 만들어졌던 무덤들도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이러한 도성제도의 실시는 나성의 축조를 전제로 함으로써 비로소 그 실효를 걷을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성의 축조는 천도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며 그 완성단계에 이르러 천도가 실현되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