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산성은 수습되는 기와로 미루어 백제시대에 이미 축성되어 통일신라시기까지 성곽의 기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성내의 수습 유물중에 백제시대의 토기편이 대체로 백제의 웅진천도 이후의 것에만 집중되고 있어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다음에 축성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더불어 성내에는 많은 건물지가 있으면서 다량의 기와가 출토될 뿐만 아니라 입지상으로 바다에 면하여 교통로상에 위치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부성산성이 군사적 목적의 시설 혹은 행정치소와 단순기능을 넘어서 보다 특수한 기능을 지닌 것이 아닌가 추정케 하는데, 백제의 대중국 교통로의 전진기지가 아니었나 추정해 보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