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웅진시대 백제 왕성
III. 웅진성의 구조와 축조 시기
IV. 웅진도성의 구조
V. 맺음말
요약
都城에 대한 연구는 시가지의 구조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도시의 구조를 통해 국가 운영의 원리와 방향을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都城은 원래 王都를 에워싸면서 축조된 羅城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熊津時代에는 都城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王都 주변에 環狀으로 배치된 山城이 羅城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山城의 안쪽은 都城으로 이해하였다. 熊津都城은 크게 보아 都城 북쪽에 자리한 王城과 그 남쪽에 전개된 5部로 나누어 볼 수 있다. 王城은 관련기록과 고고학적 측면에서 볼 때 현재의 公山城으로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夢村土城, 公山城, 扶蘇山城으로 이어지는 백제 王城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公山城의 입지와 규모가 夢村土城과 맥을 같이한다는 사실은 公山城이 遷都 후에 축조된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王城의 남쪽에 전개된 王都는 5部로 편제되어 있었다. 물론, 이때의 5部는 泗沘都城의 5部와 달리 일정한 기준에 따라 편제된 것이 아니라 자연지형에 맞추어 편제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제민천이 공주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것으로 보아 王都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자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쩌면 王城이 濟民川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쪽에 더 큰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東城王때에 굳이 熊津橋를 架設한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효율적인 王都 운영을 위해 제민천 동쪽과 서쪽을 연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熊津橋는 제민천에 가설되었던 것으로 믿어지고,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大通寺 근처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漢城時代 王都의 구조와 熊津時代 王都의 구조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漢城時代 백제 王城이 夢村土城이라면 지형적으로 보아 王城이 王都의 남쪽에 자리하고, 대부분의 시가지는 그 북쪽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돌연 遷都와 더불어 王城이 북쪽에 자리하고 대부분의 시가지가 그 남쪽에 펼쳐지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泗沘都城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熊津遷都와 더불어 王都의 구조가 변하게 되는 원인과 그 의미를 확인하는 작업은 앞으로 熊津都城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