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사비도성은 70년대 초기의 지표조사 이후 지금까지 20년 동안의 발굴조사를 통해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해결 해야 할 과제는 山積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泗沘都城은 여러 연구자들의 주장대로 사전에 준비된 계획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축성의 시작과 완성 시점에 대해서만큼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는 것 같다. 그 동안의 부소산성 조사에서 성내에 왕궁이 위치했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羅城 즉 郭城 내 어느 지점에 어느 규모로 왕궁이 있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아울러 羅城의 둘레는 약 8㎞로 생각되어 왔으나, 이중 西羅城의 경우에는 최근 조사에서 그 실재여부 조차 확실치 않게 된 실정이다. 또한 五部五巷 제도의 문제, 都城과 직접 관련된 靑馬山城과 石城山城, 蔚山城 등의 실체도 역시 未知의 과제라 할 수 있다. 泗沘都城의 源流문제는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泗沘都城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熊津城의 城內에 왕궁이 있었느냐 城外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그 보다 앞선 漢城百濟期의 慰禮城 비정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려 있는 실정이다. 최근 새로 발굴조사 중에 있는 風納洞土城은 백제의 왕성이 틀림없다고 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風納洞土城이 백제는 말할 것도 없고 高句麗, 新羅 어떤 都城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를 하고 있어, 축성의 주체 세력 및 시기와 관련하여 그 성격에 대한 판단에 신중을 요한다고 생각된다. (필자 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