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序言
II. 調査된 城郭의 檢討
III. 白帝城郭의 立地條件
IV. 石築山城의 築造方法
V. 出土遺物 - 기와를 중심으로
VI. 結言
요약
《三國史記》에 의하면 三國 중 백제에서 성곽 축조가 가장 활발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地方의 行政單位가 200城의 城體制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200城은 대부분 山城으로 파악된다. 또한, 百濟 城郭은 거의 전부가 테뫼식산성을 위주로 축조하고 있는데, 이는 山嶺에 소규모의 山城이 一列로 축조되어 있는 백제성곽이 공격보다는 방어에 목적을 두고 축조하였음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三國 중 百濟에서 소규모의 테뫼식산성을 주로 축조하여 방어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夫餘에서의 테뫼식산성의 축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夫餘의 전통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公山城을 비롯하여 鷄足山城, 黔丹山城, 姑蘇城 등에서 石築으로 정연하게 축조된 集水池가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대규모의 集水池를 정연하게 축조하고 있는 것은 아직 新羅山城에서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百濟山城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라 하겠다. 城郭遺蹟에서 기와의 출현은 城의 築造時期 및 使用時期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遺物인데, 평기와 내면에 통쪽(模骨) 와통의 흔적이 高句麗와 百濟 山城에서 공히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평기와의 內面에 繩蓆紋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 문양이 百濟의 傳統的인 技法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