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序言
II. 百濟의 南遷과 熊津
III. 公山城內 百濟 推定王宮址
IV. 熊津時代 百濟 王宮址
V. 結言
요약
백제의 웅진도읍 시기의 왕궁의 위치나 그 현황문제를 지금까지 웅진에서 진행된 각종의 고고학 조사결과와 백제의 웅진천도 전야의 정황을 배경으로 考究하였다. 왕궁이 왕이 상주하는 공간이기에 그만한 품격을 갖춘 공간이 확인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왕궁으로서의 적극적 증거를 갖추어야만 왕궁으로서의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왕궁은 단순하게 왕이 상주하는 공간에 불과하지만 도성이라던가 왕성 나아가 당대사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왕궁은 당대의 시대상황과 맞물려 그만한 품격을 갖춘 형태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어 이의 검증은 지리적 측면 외에 그만한 공간과 내용을 갖춘 유적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백제의 웅진천도는 매우 급박한 환경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때문에 왕궁의 존재도 그러한 정황을 배경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그 실체가 구명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웅진시대의 백제 왕궁에 대한 검토는 초기의 추정적 언급을 지나 고고학 조사의 활발한 진행으로 구체적 유적을 통한 검토가 진행되게 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공산성내 추정왕궁지 외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물론 이에 대한 이견이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인데 필자는 일단 공산성내 추정왕궁지로 분류된 유적이 백제가 웅진도읍시기에 왕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천도전야의 정황, 그리고 추정왕궁지의 유적내용의 재검토 등을 통해서 살폈다. (필자 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