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웅진에 도읍을 옮기고 다시 사비로 천도한 과정을 그 배경적 요인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웅진지역은 한성Ⅱ기에는 이미 백제 중앙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으며, 分江·楮石里고분군이나 山義里고분군으로 대표되는 금강 이남의 현 공주군 지역은 대체로 5세기 전∼중엽경의 간접지배 단계에 있었으며, 한성기 말경인 5세기 후반경에는 보다 직접적인 중앙지배의 관철과 관련한 군사적 거점이 지금의 공산성에 마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한성기 동안의 기반이 이곳에 정도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현재의 부여시가지 일원을 중심으로 한 사비지역은 저습지의 분포가 많아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청동기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후 웅진기까지도 이렇다할 선주 취락의 존재가 상정되기 어렵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거의 쓸모 없이 방치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 신도성을 조성하는 데에는 저습지 개발을 통한 새로운 농경지 확보라는 경제적 효용성의 측면도 내포되어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웅진천도 이후 크게 위축된 백제왕실의 위상강화 및 나아가 국가 중흥을 도모하기 위한 경제적기반을 구축하는 것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