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성벽의 구조와 출토유물로 본 토성의 축조연대
III. 과학적 연대측정을 통한 풍납토성의 절대연대
IV. 토성 내부 발굴조사를 통해 본 성벽의 축조연대
V. 맺음말
요약
風納土城은 1997년과 1999년 2차에 걸쳐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내부 주거지와 성벽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글에서는 발굴조사 결과 밝혀진 성벽의 구조와 출토유물, 성벽 내에서 출토된 목재와 목탄, 토기편 등의 과학적 절대연대, 그리고 토성 내부 유구와의 관계 등 세 가지 측면에서 토성의 축조연대를 추론하였다.
토성 벽은 중심토루와 내벽, 외벽의 3개 구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에서 출토된 토기편의 기술유형 분석 결과 중심토루에서 내벽 Ⅲ토루까지는 기원후 2세기대 이전에 1차로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토루와 외벽 역시 기원후 2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축조가 완료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연대는 성벽에서 출토된 목재와 토기편 등의 절대연대 측정 결과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내벽 Ⅴ토루와 Ⅵ토루의 판축용 목재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1세기~기원후 2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보정 연대라 검출되었고, 내벽 Ⅲ토루의 목탄과 토기편의 방사성탄소연대와 열발광연대 역시 각각 중심연대가 3세기 초와 2세기 초로 나와 토기편이 상대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토성 내부의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3중의 환호유구 및 주거지 등과의 관계와 타날문토기의 연대로부터 20평이 넘는 대형의 6각형 주거지에서 기와를 비롯한 특수 유물을 사용하던 주민 집단이 기원후 2세기대까지 사용하면 3중의 환호를 폐기하고 보다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거대한 규모의 토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상의 풍납토성 연대는 토성 내외부의 추가 조사 및 한강유역 고고학적 자료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가야 할 것이며, 『三國史記』 등 문헌자료와 비교 연구한다면 百濟를 위시한 한반도 고대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연구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