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고락산성은 고락산의 중간(해발 200.9m)에 본성이 있고, 산의 정상부(해발 335m)에 보루를 갖추고 있는 백제산성이다. 본성의 둘레는 354m로 소형에 속하며, 보루는 둘레 100m이고, 체성의 내외 벽 너비는 510-530㎝ 정도이다. 이 산성의 형식은 테뫼식이며, 테뫼식 가운데서 다시 山腹式 山城으로 그 형식 분류가 가능하다. 축성법은 협축식이며 거의 수직으로 쌓았다. 본성은 문지가 3개이며 보루의 문지는 2개이다. 집수정은 석축의 원형이 2개, 점토만을 이용한 장방형 집수정이 2개 등 모두 4개이다. 건물지는 초석이 있는 유구가 출토되지 않았으며, 모두 수혈식 건물지만 3동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가운데 편년 자료로 활용해 볼 수 있는 것은 마구류와 토기류가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의 것은 전혀 없다. 마구류는 재갈과 행엽이 있는데, 대체로 6세기 중엽경부터 보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토기류는 臺, 高杯, 蓋杯, 三足土器, 器臺 등 다양하다. 이 토기류의 속성은 백제와 가야계가 섞인 양상을 띠고 있으나 가야계토기는 아주 작다. 壺는 短頸壺가 대부분이다. 저부는 평저이고 통체부는 구형과 유견형이 함께 나타나며, 구연부는 외반하고 침선이나 흠을 돌려 凹면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호는 백제토기 가운데 비교적 늦은 시기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蓋는 꼭지의 유무와 관계없이 상면이 평평한 형식들이어서 7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유행한 형식으로 볼 수 있다. 고배와 장경호 편들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고락산성 출토유물은 대체로 6세기 중엽 이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유물상의 편년은 이 산성의 주 사용시기를 잠정적으로 6세기 중엽경부터 백제멸망까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