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초기 성책의 형태와 입지
Ⅲ. 석축산성 축조의 환경적 요인
Ⅳ. 사회ㆍ경제적 배경
Ⅴ. 맺는말
요약
이 논문은 4세기 후반 백제의 기술적 능력과 경제적 여건을 검토하여 당시에 백제가 석축산성을 축조할 수 있었던 사실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백제에서 산성이 처음 등장한 것은 3세기 후반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산성이 확대되었던 것은 4세기대이다. 이때부터 대부분의 산성은 석축으로 축조되기 시작했다. 산성을 석축으로 만드는 것과 토축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재료를 조달하기 쉬운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기술적으로 토축이 석축에 비하여 더 쉽게 축조될 수 있다는 근거는 없다. 따라서 판축식 토성에서 석축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판축은 토성의 가장 발전된 형태이고 석축과는 직접적인 계승관계는 없다. 주변에서 어떤 재료를 조달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먼저 따지고 축성을 계획하였던 것이다. 한성백제가 석축산성을 쌓을 수 없었다는 견해는 한성시대 백제의 기술적 수준을 낮게 평가한 결과이다. 그런데 4세기 후반경 백제는 석촌동에 대규모의 기단식 적석총을 축조하였다. 기단식 적석총은 고구려식과 백제식 적석총으로 구분되는데 백제식 적석총은 단면구조가 백제 석축산성의 단면구조와 서로 통하고 있다. 두 건축물은 모두 석조 건축에 해당되며 같은 기술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백제는 이미 한성시대에 석축산성을 축조할 수 있는 기술과 장인층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철산지와 제철기술도 확보되어 국가의 운영체계도 점차 정비되었다. 인구 규모로 추정하면 동시에 10여개 이상의 성을 축조할 수도 있었다. 고구려와 빈번한 전투와 축성을 위한 역역 징발이 가혹하여 신라로 망명하였던 지방민들도 있었다. 이러한 기록들로 보아 백제가 4세기 후반 경에 다수의 석축산성을 축조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배경을 가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