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에서 조사된 산성을 살펴보면 축조 시기와 성격이 불분명하다 하더라도 백제산성과 비교되는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먼저 성벽 하부에 남아 있는 基壇補築施設과 懸門式 성문 형태가 그것이다. 이러한 시설은 신라산성에서 곧잘 발견된다는 점에서 신라산성의 특징으로 믿어지는데, 그런 점에서 충북, 경기, 충남지역에서 조사된 산성 중에서 기단 보축시설과 현문식을 갖는 산성들은 일단 신라산성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아울러 경남지역 산성에서 이러한 시설물이 발견된다는 것은 그만큼 신라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성벽 축조에 활용된 성돌은 크게 보아 판석형 성돌과 (장)방형 성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판석형 성돌은 문경 고모산성이나 보은 삼년산성, 대전 계족산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얇고 길쭉하게 治石한 성돌을 말하는데, 대체로 신라산성에서 발견되는 성돌이라고 할 수 있다. (장)방형 성돌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성돌의 두께와 폭의 비율이 1:1, 혹은 1:2 정도 되는 방형, 혹은 장방형의 형태가 되도록 治石한 성돌을 말하는데, 부여 나성이나 성흥산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체로 백제산성에서 발견되는 성돌이다.
기단 보축시설과 현문식의 성문 형태, 그리고 판석형․(장)방형의 성돌 등 산성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신라는 처음 판석형 성돌을 선호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장)방형 성돌로 바꾸게 된다. 축성 재료가 이렇게 바뀌는 것은 충북, 경기지역의 신라산성으로 미루어 볼 때 신라가 중부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새롭게 백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되면 장방형 석재로 축조한 신라산성은 6세기 중엽 이후에나 출현하게 되는 셈인데, 실제로 경남지역에서 조사된 산성 중에서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는 산성들은 모두가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믿어진다. 하동 고소산성, 남해 대국산성, 사천 성황당산성, 거제 폐왕성, 밀양 추화산성 등이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추론이 어느 정도 인정된다면 경남지역의 산성은 백제지역과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 축성된 산성보다는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산성이 더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