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토성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닥점마을 뒤 해발 83.2m의 야산 정상에 위치했던 토성이나, 도시 확장 과정에서 1982년에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현재의 봉은중학교 자리에 있었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500m 정도였고, 성의 형태는 산복식에 가까웠다. 삼성동토성은 한강 쪽인 북벽은 정상부 바로 아래에 있었고, 성 밖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으며, 남벽은 산중턱 까지 내려와 있었는데 이는 삼성동토성이 북쪽인 한강의 방어를 염두에 두고 축조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성동토성이 자리 잡은 입지조건 자체도 한강 쪽인 북벽이 급경사를 이루고, 한강과 동쪽의 炭川이 자연해자를 이루는 등 방어에도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삼성동토성은 한성백제기의 토성으로 추정되며, 도성의 보조성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가 있다. 삼성동토성은 한강을 통해 도성인 풍납동토성과 몽촌토성을 향하여 올라오는 적들을 막는 마지막 방어시설이었다. 풍납동토성에서 한강 하류로 약 7.5km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새라고 볼 수가 있다. 또 한강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오는 지방이나 외국의 선박들은 삼성동토성의 통제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외부에서 고운 붉은 점토를 날라다 盛土法으로 쌓았다. 잡석은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풍납동토성이나 몽촌토성이 수평 성토다짐공법을 활용하고 판축공법을 응용하지 못한 것은 한성백제기의 축조공법 수준을 가늠하여 볼 수가 있다. 여기서 판축공법이란 협판을 사용한 축조 공법을 의미하며, 수평 다짐에서의 精粗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여튼 풍납동토성이나 몽촌토성에서는 수평 성토다짐공법이 응용되었으나, 삼성동토성에서는 단순 성토법이 응용된 것은 삼성동토성의 축조 시기가 앞선 다기보다는 도성인 풍납동토성이나 몽촌토성은 이들이 가지는 중요성 때문에 당시의 모든 토목기술들을 동원하여 공을 들여 견고하게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