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언
II. 공산성은 백제 웅진성
III. 공산성 유적발굴과 성안마을 백제유적
IV. 백제 웅진성은 왕성
V. 결언
요약
도성은 고대국가의 중심지로 도읍 등의 개념과 같은 의미이고 거기에는 국가 권력의 핵심인 왕의 거주지인 왕궁이 자리함이 보통이기에 왕도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도읍, 도성, 왕도 등이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은 추론할 수 있겠지만 정형화된 모습 등의 복원에 나름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특히 국가처럼 도성이나 도읍도 성장․발전에 나름의 정치․사회적 차별화가 있을 것이기에 일률적 모습 등 통일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이는 한국 고대국가의 도읍이나 도성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백제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천도가 되고 그 결과 탄생된 도읍이나 도성은 나름의 특징적 면모를 갖추었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백제의 웅진천도가 불가항력적이었기에 웅진도읍기의 정황도 어쩌면 그러한 환경이 고려된 특수상황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천도자체는 물론이고 도읍의 마련과 같은 일련의 정황도 계획적인 것보다 오히려 임기응변적인 것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웅진지역 백제고고학 자료의 이해는 이점이 충분히 유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공산성은 도읍지 웅진에 있는 據城으로 백제의 웅진성임에 분명하고 나아가 성내의 유적조사 결과에 비추어 도읍기의 중추적 기능 즉, 성내에 왕궁이 조성되어 왕성으로 기능하였다.
물론 도읍 혹은 왕도로서 웅진을 도성제적 측면에서 검토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가지 환경으로 미루어 정연한 계획도시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공산성인 웅진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산발적으로 관련시설이 갖추어졌다고 보아진다. 나아가 웅진도읍기의 국가 중추기능은 거성인 웅진성에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핵심은 왕궁이기에 웅진성 즉, 지금의 공산성은 백제시대의 왕성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공산성이 백제 웅진성이면서 왕성으로 분류됨에 그것이 웅진 도읍기 백제 도성 모습의 한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한성 도읍기 도성의 형상을 구체화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것의 비교는 어렵지만 사비도성과 대비할 경우 어느 정도의 차이는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차이가 제도로서 도성제 범주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는 아직 백제 도성제의 실상이 분명하지 않기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다만 도읍․도성, 혹은 왕도라는 도시의 조성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왕궁 등의 시설 마련이 어쩌면 정치상황과 밀접하게 관련하여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가 타당하다면 오히려 웅진도읍기의 웅진이란 도읍, 거성인 웅진성, 나아가 성내의 왕궁 존재 등의 상황이 특수한 것인지 아니면 보편적 것인지의 판단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