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불상은 그 연대가 거의 백제 부여도읍기로 필자는 이 기간을 대략 전후의 2기로 대별하였고 다시 각기 장기치정의 위덕왕과 무왕대의 각 40년을 주목하고자 하였다. 백제불교미술의 중기는 이보다 앞서 공주 도읍기 성왕치세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백제 침류왕 원년 동진으로부터 불교전래 이후 성왕대 이르는 약 1세기 반의 공백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이 공백기는 차치하고 공주 도읍 말기에 이르러 문헌에 처음 보이는 양과의 빈번한 교통과 화사, 공장의 내조사실을 먼저 주목하고자 한다. 아마 양조와의 문물교류, 양무제의 신불, 백제성왕의 그것이 서로 상통하여 백제국의 불교중흥을 이루었고 공주에서 대통사같은 본격적 사원창립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가 바로 성왕대 이후인 538년이고 그에 이어 위덕, 무왕대의 80년간의 장기치정은 백제 불교의 융성을 가져왔다고 추정된다. 그리하여 ‘寺塔甚多’의 나라로서 불교조형의 발달이 크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일본에 대한 불교시전이 성왕대 있었고 법사, 공장의 대거도일이 또한 위덕왕대 역역하게 읽을 수 있다. 한편 각대에 걸쳐 이루어진 중국왕조와 인적, 물적 교류와 겸익의 인도유학 같은 사실에서 백제불교문화의 발전이 기약될 수 있었다.
최근에 중서부개발계획에 따라 부여지구의 본격조사로 1980년부터 공주 부여에서의 사적발굴이 진행되었으며 백제의 유구와 유물이 수습되고 있다. 이를 통한 불교자료는 크다. 이러한 신자료를 통한 백제 불상조각을 검토하였으며 백제불상조각의 다양함과 중국과 그 이면지방과의 보다 깊은 연맥을 알 수 있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