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시대의 菩薩立像중에는 珠를 마주 잡고 서있는 보살입상이 多數 발견되며, 이들을 捧持珠 · 捧珠 혹은 捧珠 薩像으로 부른다. 佛敎에서 珠는 如意珠 또는 如意珠라고도 하고 산스크리트어로는 Cintmani또는 Mani의 摩尼로 불린다. 본고는 이에 대한 대체적인 특징과 관음보살상으로서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살폈고 양식 면에서 유사한 일본의 비조시대 보살상들과도 비교하여 보았다.
捧珠形 보살상 중에서 대체로 초기에 해당되는 新里출토 金銅像이나 泰安磨崖三尊의 보살상에 서와 같은 山形 冠의 표현이다. 또한 天衣는 양쪽 어깨에서 몸 양쪽으로 늘어뜨리면서 몇갈래로 갈라져서 좌우대칭으로 뻗치고 몸 앞면에서 X형으로 교차하고 다시 원면에는 U형으로 허리밑까지 내려오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奉珠形 보살상 중에는 뒷면이 표현된 4軀중 3軀가 이러한U形 天衣모습을 보여주며 부여 출토의 蠟石製 파편에서도 비슷한 天衣모습이 발견되었다. 日本의 像 중 飛,鳥시대의 예 중에서는 8軀가 확인되고 있다. 또한 앞면의 허리며 위로 곡선적으로 올라온 裳衣의 표현이 부여의 납석제상과 일본의 상에서도 보이는 것은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이는 日本의 嬅珠形 보살상의 模型이 同一계통이었음을 제시하여 주며 現存하는 유물로 보아서는 百濟의 6세기 후반~7세기의 보살상과 가장 연관성이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위의특징을 지니는 蠟石製 보살상 파편 중에는 그 예리한 조각 기법과 扁平한 주름 표현이 日本의 소위 止利式 불상의 대체적인 특징과도 매우 유사한 彫法인 점도 참고된다. 이들 捧珠보살상에 보이는 넙적하고 끝이 뾰족한 목걸이 형태나 가슴에 대각선으로 걸쳐입은 內衣의 표현은 백제계의 捧珠보살상이 三國초기의 다른 보살들, 즉 평양 元五里의 泥造보살상이나 百濟 軍守里의 金銅보살상과도 공통된 것으로 三國的인 보편성과 백제 특유의 독자성이 함께 있음을 알 수 있다.
百濟와 日本의 彫像 그리고 그 源流를 찾는 데는 당시 역사적인 배경. 文化의 교류, 佛敎의 受容과정, 양식 및 도상변천의 복합적인 면이 참고가 될 것이다. 本稿에서 다루는 捧珠形보살상 연구에서는, 역사적으로 百濟는 중국의 北朝보다는 南朝와 가까웠다는 점, 百濟가 日求의 佛敎傳來와 더불어 6세기 후반~7세기 초 日本의 佛敎受容 초기에 飛鳥의 佛敎文化 발전에 거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