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삼국사기와 주서, 북사, 수서, 구당서를 살펴 출토품과 대비한 것이다.
먼저 고이왕대에 백제는 고대국가 형태를 갖추며 고이왕 27년 백제품관복색을 제정하였다.
25대 무령왕릉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백제는 검박하고 금속장식을 많이 하지 않았으리라 추측했으나 그 정설이 뒤바뀌어지며 백제의 호화로움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무령왕릉에서는 왕관식 1쌍과 왕비관식 1쌍이 출토되었다. 이는 백제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순금제 관식인 것이다. 은제관식으로는 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하황리 출토 은제관식이 있다. 금동제 관식으로는 전남 나주군 반남면 신촌리 9호분, 익산 입점리 고분군 출토품이 있다.
백제가 일찍부터 등급제도를 의관으로 규정한 것으로 보이며 문헌에서도 왕은 금관식이고 6품이상은 은관식으로서 5세기 이후의 출토품에서도 역력히 일치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금동관은 재질에 있어서도 다르고 그들의 출토위치나 관식 형태 등도 기록의 관제와는 차이가 있다. 또한 금동관 출토 고분군의 편년이 이른 것볼 때, 금동관은 시기적으로 조기의 것이라 볼 수 있다.
백제국사의 관모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으나 색도로 보아 확실히 옅은 색임이 틀림 없다. 대륜 밑에 검은색은 머리로 보이는데 그것은 관모를 고정시키는 끈이 바로 관모의 옅은 색에 연결되어 내려온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국사의 관식은 은화를 하나만 앞에 입식하였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