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입식(立飾)」의 수에 대한 의문
3. 「입식」 출토상태에 대한 의문
4. 「입식」 출토위치에 대한 의문
5. 단선설(團扇說)를 증명하는 여러 사례에 대해서
6. 단선의 계보에 대한 각서
7. 맺음말
요약
무령왕릉 출토 금제 초화형(草花形) 「관식」은 「입식」이 2장 장착된 형식이 지금까지 발견된 보관에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왕·왕비 각각 흉부 주변에서 발견되었고, 「입식」 형상이 안학3호분이나 덕흥리고분 등의 벽화에 그려진 단선과 비슷하다. 이러한 근거를 통해 피장자의 흉부에 부장된 단선 식판(飾板)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지금까지 「관식설」을 대신해서 「단선설」을 주장하고자 한다.
물론 2장의 식판이 서로 겉과 겉이 겹치도록 출토되었고, 그 줄기가 안쪽으로 꺾여져 휘어 들어간 점은 「단선설」에 불리한 요인이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출토상황은 「관식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안학3호분, 덕흥리고분, 아사탑나진묘의 벽화 또는 그림의 구도를 보면 단선이 지배자의 위엄을 나타내거나 귀인의 표현방식으로 매우 중요한 것임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단선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에 보이는 권력자·지배자의 표현인 「신화(神化)」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단선사상」은 인동당초문이라는 도문(圖文)과 함께 4세기 즈음 중국 북방 이민족에 의해 널리 동아시아에 전파된 것이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 고분문화에도 이 단선사상은 깊이 침투하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