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북리 백제유적은 백제 사비도읍기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유력한 장소 중 하나이다. 여기에서 출토된 관북리 금동광배는 지금까지 국내 소개된 것들과 달리 광배 외연을 따라 장식용 결구공이 부착되어 그 외형뿐 아니라 결구공의 기능과 관련해서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또한 국내에서는 이와 유사한 작품을 볼 수 없었던 관계로 제작시기 추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 부위 보태2년명 불상광배가 관북리 금동광배처럼 광배 외연을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투공형의 결구공이 부착되어 이 광배의 제작연대를 추정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또한 광배내 화염문의 표현기법이 절대연대를 가지고 있는 북위 정광3년명삼존불입상광배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양각의 부조적인 표현기법과 미세한 음각선이 화염문의 윤곽선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화염문을 한번 더 장식한 것이다. 아울러 북위 정광연관과 6세기 초반의 불상 중에는 광배외연으로 천인상을 표현한 예가 있어서 관북리 금동광배 역시 광배외연으로 부착된 장식용 결구공에 천인상을 연결하여 장엄적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북위 정광연간삼존불입상광배의 경우 천인상을 끼워넣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렇다면 관북리 금동광배는 중국작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두원광내 연화문이 웅진기부터 나타나는 세판현상으로 13엽으로 표현되었다든가, 화염문의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상승형 불꽃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제이식과 와운문전내 구름형태와 표현방식에서의 유사점, 그리고 두광과 신광 및 광배의 의장이 단순한 점 등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이 광배는 중국작을 모본으로 한 백제에서 제작한 광배로 추정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