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고분 출토품을 통한 대구, 대선금구에 관한 연구로 우리나라 고분에서 출토된 대구는 크게 동물형대구 가운데 찌르개가 있는 대구로 형태는 마제형, 환두형, 수원형, 당초문형 대구 순으로 발전했다고 생각된다. 재료로는 청동, 철에 금도금한 것, 금 등이 사용됐다.
대선금구는 동물형 대구와 함께 발견된 예는 없고 그 형태는 장방형, 한쪽이 둥근형, 규형 순으로 변화되었다. 대구의 형태가 당초문으로 변화하면서 찌르개는 길고 예리하며 과대길이가 길어지고 요패장식 수가 많아지며 그 길이 또한 길다.
신라에서 가장 화려하고 섬세한 대구가 출토되었는데 건국 연도가 훨씬 뒤늦은 신라는 고구려, 백제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제나라 요나라를 통한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불교의 용성과 더불어 내세를 믿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에 기인한 부장의 풍습에 따라 이 지역 고분들에서는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 대구 역시 필요 이상의 긴 길이와 의미를 갖는 여러 종류의 요패장식이 보여지고 있다.
가야분 출토 마형대구와 경북 영천 출토 마형, 호형 대구와 같은 동물형 대구는 북방민족 특히 오르도스, 스키타이 문화권, 동으로 일본에서도 같은 양식의 마형대구가 출토됨을 근거로 이 지역 문화는 우리나라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찌르개가 부착된 청동대구는 흑해 북안 북방민족이 사용했던 형태와 매우 흡사하다. 또한 이들 지역은 “Animal Style”의 예술이 이루어진 지역과도 일치한다. 동물양식은 유럽의 기마 유목민, 헝가리로부터 북아시아와 고비사막에까지 이들 지역에서 행해졌다.
대구는 혁대의 발생과 더불어 사용된 것인데 대구의 형태는 단순한 실용적 요구뿐 아니라 그 시대 지역인들의 정신세계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의미를 지닌 여러 형태의 요패장식에서도 그러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