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홍성 신금성 백제토기로 대변되는 중서부해안 지역에서 나타나는 백제토기를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백제토기의 양상과 변천을 살펴보고, 그 등장의 역사적 의의와 배경에 대해 추론하였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신금성 백제토기복합체는 삼족기, 심발형토기, 장란형토기, 뚜껑, 시루, 호, 옹, 직구단경구형호 등의 8개 주요 기종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나머지는 그 출토량이 극히 미미하거나 형태파악이 어려워 기종구분이 애매한 것들도 소량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신금성 백제토기복합체의 양상은 한성백제기의 중심지역인 한강유역의 백제토기와 비교하여 대체로 그 양상은 같이하지만 기종구성은 단순함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한강유역에서 빈출하는 고배나 기대가 극소량 출토된 점은 이 지역 백제토기복합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에 이러한 백제토기가 등장하게 된 것은 지역내에서 이전 시대 것과의 계승관계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한강유역 지배집단의 세력 확장의 산물로 인지되며, 그 시점은 여타 지역의 백제토기와의 비교를 통해 4세기 중엽 무렵으로 추정할 수 있었으며, 그 소멸시점은 불명료하지만 한성백제기의 토기만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5세기 중엽 무렵으로 생각되었다. 한편 현재까지의 고고학 자료의 분포 상 4세기 전엽 무렵으로 비정될 수 있는 대규모 생활취락이 중서부 이남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어, 백제의 영역 확대 방식이 동심원적인 평면 확대가 아니라 거점 영역확보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었다. 한편 과거 물질문화체계의 일부분으로서 신금성 백제토기복합체가 한강유역의 것과 양상은 매우 유사하지만, 이의 생산은 국지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서이 높음을 태토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백제가 일찍부터 해안 지역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를 현재의 고고학자료 만으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해안가에 위치한 신금성 백제유적의 지리적 입지를 고려할 때 일부 경제적 측면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