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銅半跏思惟像을 고찰함에 있어서 日本에 현존하는 대마도의 淨林寺金銅半跏像과 長野縣의 觀松院半跏像, 개인인 松田光씨 소장 金銅半跏像의 3像과 비교해 보았다. 上部에서부터 下部에 이르기까지 名部의 양식과 수법 등을 세밀하게 살피면서 비교해 보았는데 新像이 在日 3像과 공통되는 점이 너무나도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 4像의 半跏像은 조성연대가 국적도 동일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1984년도에 淨林寺金銅半跏像을 학계에 보고하되 百濟로부터 日本으로 전해진 것이며 그 조성연대를 600년경으로 추정하였을 때 별다른 이론이 없었다. 그리고 1985년도에 觀松院金銅半跏像에 대하여 학계에 보고하되 이 半跏像도 百濟에서 조성하여 日本으로 전해진 것이며 조성시기 또한 600년경으로 추정하였을 때 국내․외 학자들이 모두 같은 의견이라고 하였다. 1988년도에 松田光씨 소장 金銅半跏思惟像의 조사내용을 학계에 보고하였을 때에도 60년경 百濟時代의 조성이라 한 내용에 대하여 별다른 의견이 없다. 다만 日人學者久野健博士가 「조사 결과 三國期 百濟의 造成으로 추정된다.」는 필자의 말에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그 문제는 다시한번 깊이 연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사실은 韓國學者의 눈으로 확인한 것이 옳겠지요」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본다면 新例의 金銅半價思惟像을 600년경 百濟時代의 造成으로 추정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앞의 수습조사 과정에서도 말하였듯이 수습지로 전해지는 扶餘邑 扶蘇山의 그 입지는 주변에 남은 건물지가 있으며 1919년에 百濟의 金銅三尊佛인 鄭智遠銘金銅如來三尊立像(보물 제196호)이 출토된 주변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은 新像의 국적과 조성연대를 추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新像의 국적과 조성연대를 추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新像의 靑綠銹와 背面最下端 破損部分의 청동, 금동성분을 살펴본 바 고대불상의 것과 동일하다는 비공식적인 이야기도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모든 내용을 종합했을 때, 이 新出 金銅半跏思惟像은 600년경에 조성된 百濟時代의 불상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百濟金銅半跏思惟像」이라 호칭할 수 있겠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