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원리유적은 토광묘 137기와 수혈식 석실분 13기가 조사되었는데, 유구의 분포상에서 비교적 규칙성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용원리유적 출토 유물에 대한 분석과 이해의 전제로, 용원리유적 출토 성시구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우선 용원리출토 성시구의 분류와 복원을 시도하고, 더불어 주변에서 출토된 성시구와 비교․분석을 통해서 구체적인 특징을 검토하였다.
백제지역에서 성시구가 출토된 유적은 화성 마하리고분군, 백곡리고분국, 천안 용원리유적, 청주 신봉동고분군, 논산 모촌리고분군, 공주 송산리고분군 등이 있다. 이들 유적은 3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걸치는 것이다. 용원리유적의 개략적인 년대는 4세기 중후반대로 편년된다.
용원리 유적 출토 성시구의 검토를 통하여 성시구의 형태에 대한 추정이 가능하였다. 출토상태를 바탕으로 추론해본 성시구의 형태는 어깨에 메는 멜빵형으로, 方立은 목재로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산형금구는 방립 주변의 시금구로 이용되었으며, 측면에는 ㄷ자형 금구가 있다.
그 동안 2점의 교구부규형금구가 서로 다른 크기로 출토된 경우 이를 모두 懸垂帶用 식금구로 파악했는데, 용원리 9호에서 출토된 鉸具附圭形板은 1점이 횡방향으로 시병고정구의 역할을 하고 나머지 1점이 어깨멜빵과 같이 부착된 형태로 출토되어 서로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시구를 부속금구의 형태에 따라서 鉸具附圭形金具․鉸具․心葉形金具․帶先端金具로 구분하여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교․분석하에 그 특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용원리 출토 성시구는 신봉동 출토품과 유사하나 형식상으로 선행하는 양식으로 판단되며 현재까지 출토된 성시구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로 편년되고 있었던 복천동 22호 출토 성시구와 부속금구에 표현된 장식성이나 亞字形金具의 결합형태, 그리고 심엽형금구의 형태를 비교할 때, 복천동 22호 출토 성시구보다 용원리 9호출토 성시구가 형식상으로 앞서는 단계임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지리적으로도 북쪽에 위치하는 용원리 유적 출토 성시구는 현재까지 한강이남지역에서 조사된 성시구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인 4세기말로 편년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