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와당의 문양 변천과 일본 최초의 가람불교인 비조사 창건과 “星組”, “花組”와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성조, 화조는 각각 백제의 원형돌기식 와당과 삼각돌기식 와당을 모델로 하여 제작되었다. 그러나 비조사의 창건와와 백제의 와당에 차이점이 확인되므로 백제 瓦笵이 그대로 전래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일본에 파견된 와박사는 백제에서 제와기술을 가지고 비조사의 창건와를 제조하였다고 추정해 볼 수밖에 없다. 본고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비조사 성조, 화조의 기원을 추적하였다.
웅진 도읍기 및 사비도읍기 백제와당을 검토한 결과 비조사 성조의 기원이 무령왕릉출토 연화문전과 화판에 있어 공통점이 살펴지는 웅진도읍기 정지산유적출토 와당으로 비정하였으며, 그 전통이 웅진도읍기 및 사비도읍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특히 성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판단중심의 小珠文과 큰 화판, 그리고 화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만들어진 자방을 통해 그 관련 유적을 사비도읍기의 가탑리사지로 비정하였다. 이와 유사한 와당은 또한 비조시대의 정림사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 화판의 판두 폭이 좁다는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인 이미지에서는 유사하다. 또한 화조의 祖形이 되는 삼각돌기식은 부여 정암리요지에서 그 시초를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사비도읍기 전 기간에 걸쳐 원형돌기식 와당과 더불어 가장 유행하였던 양식중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창건와를 위해 제작된 비조사 와요와 부여의 정암리요지가 구조형태상 유사한 것만 보더라도 양자의 친연성이 살펴진다. 물론 이러한 삼각돌기식도 6세기 4/4분기~7세기 1/4분기 즈음에는 화판이 평면적으로 되면서 음각선으로 이루어지거나 혹은 판단 중심의 삼각돌기가 길게 뻗어내려 화판 상단을 양분하는 것과 같이 변화하기도 한다.
비조사의 성조, 화조는 각각 변화․발전하여 일본의 여러 와건물지에 사용되고 있음을 여러 유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성조의 전통은 法隆寺若草伽藍蹟, 定林寺, 横井廢寺, 石神遺蹟, 坂田寺蹟, 中宮寺, 法輪寺, 四天王寺, 豊浦寺, 斑鳩寺 등에서 그 瓦例를 살필 수 있고, 화조는 坂田寺, 正法寺등에서 遺例를 살필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