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序言
II. 黑色磨硏土器 資料의 檢討
III. 出土遺蹟과 年代
IV. 黑色磨硏土器의 屬性과 그 意味
V. 結言
요약
우리나라 삼국시대 토기는 露天窯에서 酸化燒成하던 무문토기 단계를 벗어나 閉鎖窯에서 還焰燒成하여 灰色系統의 토기의 생산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토기 제작기술의 발전은 금속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높은 온도를 생성할 수 있는 기술의 습득이 있었고,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토기 製造術의 유입이 이루어지면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토기 製造術의 발전은 원삼국기를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면 삼국각자의 문화배경 차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기에 토기의 형태나 종류에 다양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시기 토기생산의 주는 회색토기가 차지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도 일반적 시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黑色磨硏土器는 매우 異質的 존재이기도 하다. 흑색마연토기는 당시의 토기문화에서 보면 기종이라던가 제작기법 등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가지고 있어 이질성은 매우 두드러진 편이다. 동질의 토기는 청동기시대 후반의 흑도 혹은 흑색마연토기, 검은간토기라 불리는 것이 있다. 이 청동기시대 흑도는 소성 후 표면의 再磨硏에 의해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도는 것으로 표면적 현황으로 보면 흑색마연토기와 흡사하다. 다만 기형이라던가 문양의 有無, 그리고 표면의 광택의 존재에서는 차이가 있다. 더욱이 이들은 백제의 흑색마연토기와는 문화적 차이가 크게 있는 것이고, 시간폭도 적어도 400~500年間은 계측될 수 있기에 상호관련을 맺기는 어려운 것이다. 흑색마연토기와 관련된 자료의 영세성은 여전하기에 현재로서는 이외 존재인정과 더불어 백제토기의 범주에서 그 이질성을 탐색하는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흑색마연토기는 製作工程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기술적 난이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님에도 백제토기로는 보편성이 적다. 더불어 출토유적을 검토하면 在地的 속성이 있는 유적에서 출토됨이 보편적이고, 威勢品的 성격을 농후하게 지니고 있다. 나아가 백제토기의 전개에서 보면 흑색마연토기의 등장과 더불어 동형을 모방한 토기가 갑자기 나타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결국 백제토기로서 흑색마연토기의 존재는, 현재의 자료에 의하면 이들이 백제사회에서 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외부에서 유입되어 이후 백제토기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더불어 이 흑색마연토기의 소유나 副葬은 政治․社會的 逆關係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