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編年設定方法과 紋樣 種類
가. 編年設定方法
나. 分類方法 및 種類
Ⅲ. 紋樣別 調査
Ⅳ. 制作技法 및 編年 檢討
가. 槪要
나. 制作技法에 나타난 기와 특징
다. 編年
Ⅴ. 맺음말
요약
彌勒寺址는 百濟말 武王(600~641)때에 草創되어 조선 임진왜란 시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기와는 약 300만점이 넘게 출토되었으며, 이들 기와는 初期 建物址와 土層別 조사가 함께 이루어졌다. 이러한 작업과정에서 草創期인 百濟 및 統一新羅時代의 기와가 확인되었다. 백제시대의 기와는 線紋, 繩蓆紋, 格子紋의 세 종류가 확인되는데, 이러한 문양의 종류는 新羅나 高句麗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이었다. 삼국시대 사용된 문양은 고구려의 경우는 위의 세 가지 문양이외에 菱形紋 鋸齒紋, 蘆簟紋(삿자리문)이 더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평기와에서 사용된 三國의 紋樣은 문양이 아직 圖式化 段階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즉 기와의 成形科程에서 충분한 密度를 위하여 打捺作業의 필요성이 보다 컸던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기와를 제작하는 바탕흙은 통상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가래떡 형 素地(粘土帶), 다른 하나는 널판형 素地(粘土板)가 그것이다. 특히 가래떡형 素地는, 길게 말아 만든 흙으로서 瓦桶에 하나씩 올려 가면서 쌓아 놓고 打捺道具로서 충분하게 두드려야 기와의 형태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때 打捺道具는 밀착되는 부분에 格子紋이나 線紋등의 문양을 깊게 새겨 놓음으로서, 打捺時, 흙이 짓이겨져 충분한 밀도를 받을 수 있거나 각 素地들이 잘 付着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삼국시대에는 이러한 실제 기능을 위하여 문양이 導入되었을 것이다. 統一新羅中期에 이르러 기와의 문양은 큰 변화를 맞게 되는데, 이른바 魚骨紋의 등장과 다른 문양과의 混用이 도입된다. 지금까지 수백 년 이상 세 가지 내외의 문양만을 고집하던 전통은 어골문(樹枝紋)의 도입으로 인하여, 짧은 시기동안 100여종 이상의 문양이 파생된다. 이후 어골문은 高麗時代에 더욱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다. 제작기법에서 본 평기와 제작은 瓦桶의 종류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즉 통쪽 瓦桶은 가늘고 긴 板子形 나무나 대나무를 자른 것을 구멍을 뚫은 후, 끈으로 엮은 것이다. 또 圓筒瓦桶은 통나무 속을 파서 손잡이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이외에 날개로 제작하는 기법이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근래 풍납토성 발굴에서 출토된 한성도읍기에 이러한 낱개 제작흔적이 보이나 아직 검토단계에 있다. 앞으로 백제 전반기의 기와 제작기법은 풍납토성 등의 기와조사에서 많이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