煙家는 排煙施設의 一部分으로서 굴뚝의 상부에 사용된 장식성과 기능성을 갖춘 것이며, 그 하부에는 煙筒을 끼워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백제 煙家는 부여·익산지역에서 출토·확인되고 있는데 이를 검토한 결과 그 형태상 특징으로 보아 불교의 연봉 모티브를 응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불교의 성행과 함께 百濟 泗沘期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제작·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그 기능은 건물의 배연시설인 굴뚝 장식에 사용된 것으로 판단되며, 이 경우 煙家의 하부에는 연통형으로 제작된 토기를 결합하여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煙家는 백제 이후 조선시대까지도 그 기능과 전통이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고, 형태상으로도 유사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백제 煙家자료와 형태상 유사한 고구려 토기자료의 존재를 들 수 있다. 集安禹山下墓區M2325호에서 부장품으로 출토되었는데 이를 보고한 중국 학자들은 중국 陶瓷가운데 倉과 유사한 점을 들어 창으로 분류하였으나, 여러 가지 점에서 중국의 倉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고 오히려 백제지역의 煙家자료와 형태상, 크기에 있어 매우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 토기의 보고된 연대관을 따른다면 백제 煙家와의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계보나 기원문제를 논할 수 있을 것이나 본고에서는 이 문제는 향후 자료의 증가와 함께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자 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