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내륙에 위치한 금산지역은 ’73년에 창평리에서 출토된 삼각투창유개고배 등의 가야계 토기가 보고되었고, 최근에는 신라토기가 출토되는 장대리고분군과 백제토기가 공반된 수당리유적이 조사되어 백제와 가야·신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지역으로 주목된다. 그러나 아직 지역 자체 내에서의 자세한 편년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먼저 지역 자체의 토기 편년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금산지역의 삼국시대 토기는 백제토기가 주를 이루면서 대가야계토기 등이 공반되는 Ⅰ단계와 신라토기가 출토되는 Ⅱ단계로 크게 2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신라토기가 이입될 수 있는 계기는 백제 聖王의 管山城 전투 敗死(554년) 이후 신라의 이 지역 진출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 이견은 없다. 한편 Ⅰ단계는 수당리주거지(5세기 초)-수당리석곽묘(5세기 전엽)-창평리파괴분(5세기 중엽) 순으로 상대편년된다. 이 중 창평리토기를 통해 주로 서부경남지역과의 관련성이 지적되어 왔는데, 진안 와정토성에서 5세기 중엽 경의 대가야계 뚜껑이 출토된 점과 금산 지역을 통해 연결되는 교통로 등을 감안한다면 5세기∼6세기전반대의 금산지역 토기문화는 주로 백제와 대가야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부분이 많음을 지적하였다. 또 음지리에서 최근 출토된 대가야계 有蓋長頸壺는 6세기 중엽 무렵으로 편년될 수 있어, 이 무렵까지 지속된 백제와 대가야 사이의 관계로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