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漢城期의 초기 마구는 최근 중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집중 출토되고 있는데 아직 3세기대의 것은 없어《三國志》魏書東夷傳韓條의 기록과 대체로 부합된다. 백제 마구는 鑣轡가 轡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등자도 초기부터 木心에 철판을 보강하는 木心鐵板등자가 5세기대까지 계속 제작되면서, 장식성이 그다지 없는 실용적 마구가 주를 이루는 점이 큰 특징이다. 이는 天安龍院里1호분에서 지역의 最古위상에 해당되는 金銅裝環頭大刀가 공반되었음에도 마구에서는 장식성이 뚜렷하지 않은 점에서도 방증되며, 백제가 다른 지역과 달리 지배계층의 권위를 표상하는 방식에서 무언가 차이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漢城期마구는 표비의 변화를 기준으로 하여 대략 4段階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
백제 마구 도입기에 해당되는 Ⅰ단계에는 楡樹老河深56호묘 것과 동일한 형태의 鑣轡 및 짧은 삽자루形引手를 가진 표비와 橢圓形板轡, 木心鐵板鐙子가 나오고 있으며, 연대는 4세기 전반~중엽 경으로 비정된다. 4세기 후반 경의 Ⅱ단계에는 在地化과정 속에 轡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2조선의 철봉을 각기 꼬은 긴 삽자루形인수와 1조선 철봉의 外環이 꺾여 있는 긴 인수의 鑣轡, 梯形鏡板의 板轡등은 이를 잘 보여준다. 4세기 말 이후의 Ⅲ․Ⅳ단계에는 백제 마구가 정형화되어, 표비는 遊環으로 연결되고 銜에 비해 2배 이상 긴 引手에 立聞用金具는 2脚의 交針이 있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판비도 수는 적지만 銜外環을 이중으로 鍛接하는 백제의 독자적인 특징을 보여주며, 기본적으로 木心에 4面을 철판으로 보강한 등자는 현재 5세기대에 나오고 있다.
이러한 백제 마구는 중국 수입자기의 교차연대에 기초한 고분군 편년 및 마구 형식으로 보아 동북 지역의 선비계 마구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騎乘馬具를 수반하는 급격한 주민 이동이나 지배층의 교체는 중서부지역의 물질문화 흐름으로 보아 성립되기 어려울 것 같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