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유역 고분에서 출토된 금속유물은 용도에 따라 裝身具類, 馬具類, 武具類, 農·工具類, 其他 등으로 구분되며, 묘제는 변화에 따라 금속유물의 종류와 수량이 다소 차이를 이루고 있는 점이 확인된다. 따라서 영산강유역 묘제의 변화와 관련하여 금속유물의 변천 양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영산강유역에서 출토되는 금속유물은 영세성을 띠고 있어 독자적인 시기설정은 현재까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시기를 달리하면서 금속유물의 부장수와 종류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금속유물의 변천은 영산강유역에서 확인되는 묘제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영산강유역의 금속유물들은 크게 다섯 時期로 나눌 수 있으며 각 시기의 연대와 특징은 다음과 같다.
Ⅰ期의 연대는 3세기 후반 ~ 4세기 전반으로 후기 토광묘와 初期甕棺古墳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Ⅱ期의 연대는 4세기 전반 ~ 5세기 전반으로 專用甕棺古墳 단계에 해당된다. Ⅲ期의 연대는 5세기 전반 ~ 5세기 후반으로 옹관고분의 最盛期와 해체기에 해당되며, 화려한 威勢品이 급속히 증가하는 시기이다. Ⅳ期의 연대는 5세기 말 ~ 6세기 전반으로 전기 석실분의 출현과 발전기이다. Ⅴ期는 6세기 중엽이후로 전형적인 백제계 석실인 후기 석실분이 나타나는 단계이다.
영산강유역에서 출토되는 금속유물은 역사적으로는 백제문화권에 포함되지만 각각의 유물들의 조합상을 살펴보면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즉 銀製冠飾의 출현 이전인 6세기 중엽까지 영산강유역의 在地勢力들은 어느 한 지역의 문화를 받아들였기 보다는 지리적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百濟,, 新羅, 伽揶, 倭등 주변 국가의 문화를 각 시기에 따라 다르게 관계를 맺으면서 독창적인 문화권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