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 반가사유상을 연구를 위하여 석조반가사유상 4구와 금동반가사유상 7구를 살폈다. 석조상에 있어서는 원각상 3구와 마애상 1구를 살폈는데 원곽상은 완형이 아니었으나 마애상은 완형이었다.
일반적으로 소형을 다루기 쉬운 편이며 조상에 있어서도 초기에는 기교가 부족한, 즉 소박한 형태의 조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원각상 3구는 조성연대를 6세기 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서산마애반가상에 있어서는 주존인 여래입상과 우측 협시보살입상 등과 아울러 생각해볼 때, 다소 뒤진 600년경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으로 보면 작은 불상들을 조성한 연마의 기술이 발휘된 반가사유상이 서산마애상이 어닌가 한다.
금동반가사유상에 있어서는 국내의 4구와 일본에 전하는 3구를 각각 살폈다. 국내에 전하는 금동상 중에서는 부소산성출토금동반가사유상을 600년경 조성으로 보아 방형대좌상과 금동반가사유상보다는 앞서는 것으로 생각되며 김제출토동판상은 당불의 영향이 가장 짙은 것으로 7세기 중엽에 이르러 조성되어 3상들보다는 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 전하는3구의 반가상은 각기 전래경위와 장소가 같지 않다하더라도 각부의 양식 수법으로 보아 거의 같은 때인 600년경으로 추정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