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한성백제시기의 고고학적 연구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석촌동고분군, 미 사리 등 동시기의 중앙으로 여겨지는 현재의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를 중심으로 한 연구과제는 성곽의 발생, 漢城樣式土器의 형성과 대형고분의 등장으로 대변되는 백제국가형성 단계의 고고학적 지표에 관한 것이었다. 반면에 그 동안 조사 성과가 미흡했던 경기서남부 일원에서 백제 한성기를 전후한 시기로 편년되는 유적의 조사례가 급증하면서 중앙과 다른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고, 백제 한성기에 대한 고고학적 논의가 서울 강남일원의 한정된 공간을 탈피하여 보다 광역화된 연구로 전환될 수 있게 되었다. 특정양식 토기의 성립과 그의 일정한 분포범위를 기준으로 백제국가 단계의 토기를 ‘百濟土器’라 지칭하고, 그의 등장시점을 3세기 중반경으로 보는 견해를 수용하는 입장인 바, 본고에서는 서울 강남지역과 비교 가능한 연구조사 성과를 토대로 경기 서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백제 한성기의 지역 토기 편년을 시도해보았다. 현재까지 경기 서남부지역에서는 원삼국시대의 이른 시기로 판단되는 유적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타 지역과의 비교를 통해 보완이 필요한데,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통해 볼 때 원삼국 Ⅰ期와 Ⅱ期의 이른 단계는 경기 북부지역이나, 동부지역과 거의 유사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삼국 Ⅲ기에 이르러 한강 하류지역을 비롯한 중부지방의 다른 지역과 차이를 보이는 점이 간취되는데, 기안리유적을 비롯한 유적에서 낙랑계토기가 다량 확인된다는 점과 토기 기종구성상 천안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지역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보여 지는 등 이 시기부터 지역성이 파악된다. 시기는 대략 3세기를 전후한 시기에서 3세기 전반대에 해당된다. 3세기 중반이후 서울 강남지역에서 한성백제양식 토기가 형성되는 시기에 들어서 이 지역은 장란형토기와 심발형토기가 성립되는 단계와 중앙양식토기가 출현하는 단계로 구분 가능한 데, 대체로 4세기를 전후한 시점을 기준으로 앞의 3세기 후반에서 말까지는 Ⅰ-1기, 4세기 중반까지는 Ⅰ-2기로 구분하였다. 편년적인 근거는 한성양식토기의 연구 성과를 참조하였다. 이후 한성 Ⅱ기는 4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한성중앙양식토기가 경기서남부 지역에 전반적으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