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언
II. 정창원 문서와 백제유물
III. 백제 유물의 전래와 중신겸족
IV. 정창원에 소장된 경위
V. 정창원 백제유물의 역사적 성격
VI. 결어
요약
“적색옻칠장 1口를 백제 의자왕이 內大臣에게 보냈다”는 정창원문서의 짤막한 1행 기록을 토대로 여기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기록으로부터 정창원에 현존하는 천무천황 이래로 왕실의 가보이자 천무계 왕통의 계승자임을 상징하는 적색옻칠장도 백제에서 보낸 물품임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中臣鎌足 이래 藤原家의 가보였던 적색옷칠장의 성격도 분명해졌고 그 속에 수납되었던 바둑 등 다양한 물품의 유래와 역사적 의미도 확인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 물품은 7세기 중엽 백제 왕권에서 왜 왕권의 실세들에게 보낸 것이다. 그것은 백제외교의 방식이었고 양국의 친연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피의 정쟁을 통해 수립한 개신정권의 3인방, 中大兄皇子(天智天皇)과 大海人皇子(天武天皇) 그리고 中臣鎌足은 왕권의 사활을 건 백제구원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권력을 담보로 한 백강구 전쟁은 단순한 파병이 아니라 백제와의 강한 친연성에 바탕을 둔 피할 수 없는 백제사수를 위한 결사 항전이었다. 그러나 나․당연합군이라는 거대세력에 의해 실패로 끝났지만 왜 왕권은 수많은 백제의 선진 인적자원을 얻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천황제 율령국가를 탄생시킨다. 바로 백제라는 대상은 일본지배층에 있어 수백년 간 그들이 추구하고자 한 지향점자 도달점이었다.
壬申의 난 때 소실된 천지천황에게 보낸 옻칠장을 제외한 2개의 물품은 천무천황 직계왕실의 가보와 고대일본의 최대 귀족 藤原家의 가보로서 중시했던 물품이었고 나아가 성무천황과 광명황후 부부의 애용품으로서의 역사적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백제 멸망 직전 왜 왕권의 핵심 인물들에게 전해진 백제의 물품은 고대일본 왕실의 정신문화로서 계승되었으며 백제멸망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일본열도에 남아 백제왕가를 계승한 선광을 시작으로 하는 의자왕 후손들은 百濟王이라는 특별 성을 하사받고 百濟王神社, 百濟寺를 건립하는 등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일본왕실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으며 명문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백제와 일본, 국교의 성립에서 백제 멸망에 이르는 3백년간의 격동하는 동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불변의 우호국으로서 유지해 왔으며 이러한 양국의 친연성, 우호정신은 백제멸망 이후에도 계승되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정창원의 유물은 말해주고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