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유적의 개요
Ⅲ. 사찰명기와의 분류
Ⅳ. 사찰명기와의 고찰
1. 사찰명기와의 분포
2. 사찰명기와의 연대
3. 익산 백제 왕궁과 사찰의 관계
4. 익산 백제 왕궁터 내 사찰의 성격
Ⅴ. 맺음말
요약
익산 백제왕궁터는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위치한 왕궁리유적으로 1976년 부분적인 시굴조사에서 유적의 대체적인 윤곽이 확인되었고 1998년부터는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 점차 유적의 성격이 밝혀지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금마군에 대관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대관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익산 백제왕궁터의 조사과정에서‘관궁사’,‘대관관사’,‘왕궁사’등의 사찰이름이 표시된 기와 9종류, 134점이 수습되었다. 출토된 사찰명기와는 금당지와 강당지 주변에서 집중 출토되고 있지만 궁의 담장 주변에서도 수습되어 사찰경영과 동시에 궁의 담장도 보존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찰명기와의 제작흔적과 등문양 등을 검토해 보면 모두 통일신라기의 기와로서 그중‘대관관사’명기와가 ‘관궁사’명기와 보다 빠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익산 백제왕궁 내에 건립된 사찰은 무왕이 사후에 익산쌍릉에 묻히게 되자 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된 원찰로서 건립 당시에는 ‘대관사’로 불리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관관사, 관궁사로 변하였고 과거 백제 왕궁 내에 건립된 원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와공에 의해 ‘왕궁사’라는 사찰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 요약)